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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 ‘대인배 논쟁’이라는 제목의 질문이 올라왔다. 내용인즉, 대인배가 “훌륭한 나쁜 놈”을 뜻하는 말이라는 기사를 봤는데 그래서 사용하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이에 온라인 가나다 상담원은 “현실적으로 ‘마음 씀씀이가 넓고 광대한 사람 또는 그런 무리’를 이르는 말로 ‘대인배’가 쓰이고는 있으나 조어적으로 따진다면 ‘-배’는 불량배, 폭력배, 소인배와 같이 주로 부정적인 명사에 붙는 말이므로 ‘대인’과 어울려 쓰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현재 ‘대인배’는 표준어가 아니라는 점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답을 달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담원은 무슨 근거로 접사 ‘배(輩)’가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고 하였을까? 분명 표준국어대사전(이하 ‘사전’)에는 “무리를 이룬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만 풀이되어 있는데 말이다. 그것은 사전의 뜻풀이와 함께 제시된 용례가 ‘불량배, 소인배, 폭력배’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례로 사전에는 접사 ‘배’가 붙은 말로 ‘간신-배, 건달-배, 모리-배, 무뢰-배, 부랑-배, 불량-배, 소인-배, 시정-배, 정치-배, 토호-배, 폭력-배’ 등 부정적인 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전에는 또래를 뜻하는 동년-배(同年輩)와 소년의 무리를 뜻하는 소년-배(少年輩), 나이가 어린 무리를 뜻하는 연소-배(年少輩)라는 말도 있어서 접사 ‘배’의 뜻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상담원도 “주로” 그렇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대인배’를 부적절한 말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실례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지 않은 동류배(同流輩), 진무배(鎭撫輩), 충의배(忠義輩), 학생배(學生輩), 향소배(鄕所輩) 등이 적지 않다.
‘대인배’가 표준어가 아니라는 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단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표준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특성상 합성어나 파생어는 모든 말을 사전에 다 등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이 사전도 아니고 전자 사전에서 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사전의 등재 유무로 표준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부적절하다. 게다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대인배’가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어서 관점에 따라 사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인배 논쟁을 보면서 우려했던 점은 이를 근거로 한국고전번역원의 원장이 “대통령이 대인배 단어를 잘못 쓰는 일을 지적하셨는데, 이건 학생들이 한자를 배우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한자 교육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해달라”고 건의했다는 점이다. 문해력 논란의 끝도 한자 교육이고, 대인배 논란의 끝도 한자 교육이라니 참으로 놀랍지도 않다. 본질은 한자 교육의 부재가 아니라, 교육의 부실에 있지 않을까?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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