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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공공언어학회를 비롯해 국립국어원 등은 공적 맥락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는 바르고 쉽고 품위 있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비록 목청껏 외쳤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은 없다. 그리고 방송언어는 대표적인 공공언어 중 하나이므로 마땅히 바르고 쉽고 품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21대 대통령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여전히 우리나라 선거방송언어는 바르지도 쉽지도 품위 있지도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선 바르지 않은 공공언어로 "캐스팅보트가 되다"를 꼽을 수 있다. 캐스팅보트(casting vote)는 “가부(可否)가 동수(同數)일 때 의장이 행하는 결정투표. 또는 그 권한.”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충청도 민심이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캐스팅보트를 행사한다"거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라고 해야 바른 말이다. 그도 아니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캐스팅보터가 되다"라고 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쉽지 않은 공공언어로 궐위와 바로미터, TK, PK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방송에서는 이번 대선을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라고 소개했는데, 궐위(闕位)는 궁궐의 '궐'과 자리의 '위'를 더한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이므로 "대통령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선거"나 "대통령의 자리가 비어서 치른 선거"라고 했어야 한다. 또한 바로미터는 잣대나 척도, TK는 대구 경북, PK는 부산 울산 경남이라고 했어야 한다. 그게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참고로 캐스팅보트는 바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쉽지도 않기 때문에 결정표라고 하면 어떨까?
끝으로 품위 없는 공공언어로 관전 포인트와 격전지, 승부처, 텃밭, 깜깜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말들은 아무리 차별이나 혐오의 의도가 없이 썼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방송의 품위를 떨어트릴 수 있으므로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관전(觀戰)이라는 말은 “전쟁의 실황을 직접 살펴봄.” 또는 “운동 경기나 바둑 대국(對局) 따위를 구경함.”을 뜻하므로 선거를 전쟁이나 경기로 본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격전지와 승부처도 마찬가지다. 텃밭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말이 될 수 있으며 깜깜이 기간이라는 말은 차별 표현이 될 수 있어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한국공공언어학회 정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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