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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뉴스에서 군이 비상계엄을 앞두고 영현백(英顯袋)을 대량 구입했다는 의혹이 보도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한 정치인이 "영현백에 들어갈지언정 굴복하지 않는다"라는 손 팻말을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영현백이라는 말이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영현백은 사전에 없는 말로서 전사자를 수습할 때 사용하는 군용 가방을 일컫는 군사 용어이다. 참고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근무하는 특기병 중 전사자의 유해 봉안, 안장, 영결식 등을 도맡아 처리하는 군인을 영현병(英顯兵)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일선 사건・사고 현장에서도 이런 장비를 영현백이라고 부를까? 그렇지 않다. 이 말은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때 뉴스에 처음 등장한 말로 일상 용어는 아니다. 일상적으로는 ‘시신백’이나 ‘시신가방’이라고 부른다. 소방 용어로는 ' 사체낭' 또는 '사체포'라고 한다. 유해를 임시로 수습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루나 가방 형태의 장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망자의 영혼을 높여 이르는 ‘영현(英顯)’이라는 말이 너무 낯선데도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현병’이니 '영현행사병'이니 하는 엉터리 표현을 두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있다. '영현'은 수습 또는 처리의 대상이다. 따라서 ‘영현병’은 ‘영현수습병’이나 ‘영현처리병'이라고 해야 한다. 이를 줄여 그냥 '영현병'이라고 하면 사망한 군인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있으니 혼란스럽다. 게다가 한자로 자루나 주머니를 뜻하는 ‘백(袋)’을 영어의 ‘bag’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영현백’이나 ‘영현병’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오해만 살 뿐이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국립국어원 등이 공공언어 순화 사업을 하고 있다. 다소 억지스러운 순화어가 없지 않지만, 그래서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적어도 공무원이 사용하는 언어만큼은 국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온 세종 나신 날을 앞두고 지금도 불통의 언어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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