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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백 텔레비전이 막 보급되던 시대에 태어난 텔레비전 세대로서 인터넷 기반의 요즘 세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아무나 말을 하고, 아무나 글을 쓴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세상을 살다가 이제는 모두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세상이 되다 보니 참으로 시끄럽고 심란하기 그지없다.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말과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글을 더 자주 접하게 되어서 그렇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달라진 자연스러운 풍경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렇게 말을 해도, 저렇게 글을 써도 되는 걸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해인 수녀는 ‘말을 위한 기도’에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마음가짐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의 자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물기 때문이고, 말이란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며,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해야 그제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며칠, 이명은 더 심해졌고 눈은 더 침침해졌다. 미디어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아침저녁으로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다. 온갖 말과 글이 쏟아져 들어온다. 정말이지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근거 없는 말, 무책임한 말, 공격적인 말, 자극적인 말. 누군가의 마음 밭에 생각의 씨앗을 뿌린다는 심정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쓸 수는 없을까? 좀 더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그렇지만 좀 더 따뜻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는 없을까?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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