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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7일 밤 10시, KBS 1TV는 ‘대통령실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특별대담을 방송했다. 당시 대담은 KBS 9시 뉴스의 박장범 앵커가 맡았는데, 사회부 기자 출신인 박 앵커는 명품백 논란과 관련해 문제의 디올백을 가리켜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뭐 쪼만한 백이죠.”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박 앵커는 ‘파우치 앵커’라고 불렸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조차 박 앵커의 질문을 “무딘 질문”이라고 혹평했다. 이와 관련해 박 앵커는 9일까지만 해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파우치’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실제로 해당 제품명도 ‘레이디 디올 파우치’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다가 10월 23일, KBS 사장 후보로 나선 박 앵커는 이사회 면접에서 “수입 사치품을 왜 명품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쪼만한 백”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도 “파우치는 ‘백’에 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아니므로 우리말로 ‘작은 가방’이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박 앵커의 말처럼 ‘디올백’을 ‘사치품’이라고 하지 않은 까닭을 두고는 방송에서 자극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고, ‘디올’을 ‘외국 회사’, ‘디올백’을 ‘파우치’와 ‘백’이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방송에서 특정 회사와 제품을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세간의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박 앵커가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한 말인지 알 수 없으나, 박 앵커의 말은 궤변이 아니라 공공언어 전문가들이 즐겨 쓰는 논리이다. 공공언어 전문가라면 고가의 가방을 ‘명품백’이라고 하는 것은 저가의 제품을 차별하는 표현이 될 수 있으므로 ‘명품’이 아니라 ‘고가품’이라고 해야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보다 이해하기 쉬운 말을 써야 하므로 ‘파우치’가 아니라 ‘작은 가방’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더욱이 ‘명품’을 ‘사치품’이라고 바꾸어 부른다면 이른바 과시 소비 또는 보복 소비를 줄일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고도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방송에는 품위 있는 공공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령 그렇더라도 문제의 디올백을 가리켜 “쪼만한”이라고 하고 “놓고 갔다”라고 한 것은 방송언어의 품위라는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다분히 가치중립적인 말이 아니라 가치편향적인 말처럼 들린다. 본디 말의 의미는 텍스트보다 컨텍스트, 즉 맥락에 좌우되기 마련이므로 듣는 귀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들을 수 있으니 더 이상의 말꼬리 잡기는 피하고 싶다. 다만 ‘디올백’과 같은 고가의 가방을 ‘명품’이 아니라 ‘고가품’이나 ‘사치품’이라고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 ‘파우치’를 이해하기 쉽게 ‘작은 가방’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놀림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곧 공공언어의 품위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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