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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눔

[칼럼] 쉬운 공공언어와 '시발점'

보리밥나무 2024. 11. 9. 13:48

지난달 107,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생문해력실태 교원 인식 조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서울시교육청은 이달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학생들의 문해력을 진단하는 검사를 실시했다. 보고서의 내용인즉, 전국의 초중고 교원 5,848명 중 91.8%는 예전에 비해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응답했고, 34.4%는 학생들이 전문용어나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학생들의 문해력이 저하된 원인으로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의 지나친 사용(36.5%)과 독서 부족(29.2%), 어휘력 부족(17.1%) 등을 꼽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독서활동 강화(32.4%)와 어휘교육 강화(22.6%), 디지털 매체 활용 습관 개선(20.2%), 토론과 쓰기 등 비판적 사고 및 표현력 강화(11.4%)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선생님이 겪었던 학생의 문해력 부족 사례를 묻는 주관식 문항에는 서술형 문제에 취약하다든지 가정통신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읽기 능력의 저하를 지적한 응답도 있었지만, 금일을 금요일로, 두발(頭髮)을 두 다리로, 무설탕을 무로 만든 설탕으로,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중식을 중국 음식으로 착각한 학생이 있었다든지 사건의 시발점이라는 말을 듣고 왜 욕을 하냐고 묻는 학생이 있었다는 식으로 몇몇 학생의 어휘력에 관한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5쪽에 불과한 보고서를 읽는 내는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정말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의 책도 있는데 도대체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 걸까? 가장 기본적인 읽기와 말하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이러한 문제의 모든 책임이 학생들에게 있다는 말처럼 들려 무안하기도 했고, 몇몇 학생의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되었다.

 

당장 내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하고, 교사의 절반 이상이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찬성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디지털 매체의 지나친 사용이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마당에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당장 대입 제도의 개편으로 주요 22개 대학이 논술전형을 도입한다고 하는데, 학교만 믿어도 되는 걸까? 보고서의 내용만 놓고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 아예 대학수학능력이 없다는 말처럼 들려서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설문조사에 참여한 교사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기본적으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언어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작점이나 출발점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시발점(始發點)’의 뜻을 모른다고 개탄하지 말자. 국립국어원이 1992년에 시발점출발점으로 순화하였고, 우리 언론에서도 시발점보다 시작점이나 출발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시발점은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기성세대의 언어일 뿐이다.

 

또 황진이의 시조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기생의 뜻을 모른다고 놀라지 말자. 그래서 학교가 필요하고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이 황진이를 알겠는가, 홍랑과 이매창을 알겠는가. 어느 한 교사의 지적처럼 학부모 중에서도 등교등원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듯이 모를 수 있다. 심심한 사과에 이어 시발점의 뜻을 모른다고 청소년의 문해력 저조를 언급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이다. 투표 문해력이 더 문제이고, 투자 문해력이 더 문제란 점에서 성인 문해력도 점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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