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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9일, 방콕발 제주항공 2216편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동체 착륙했으나 끝내 속도를 줄이지 못해 로컬라이저(LLZ) 안테나 콘크리트 구조물에 부딪혀 폭발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영국의 항공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David Learmount)도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은 범죄행위에 가깝다”라며 “활주로와 불과 200m 거리에 저런 둔덕이 있다는 건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록 비전문가이지만 사실 확인을 위해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발간한 '계기착륙장치(ILS) 시설을 위한 전자설치지침'이나 '계기착륙시스템의 입지 기준' 등을 비롯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제시한 ‘ICAO DOC 9157’ 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ILS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임계값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하며,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지지대 위에 장착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에 있는 한 공항타워 건설회사가 발행한 기술요약서를 보면 2004년에 캐나다에서 발생한 MK747 추락 사고를 예로 들어 일부 지역에서 지형상의 문제로 LLZ 안테나의 고도를 높이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예규 제350호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제6장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공항장비 및 설치물’ 제23조(도입)를 보면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실중량과 높이를 최소로 유지하고 항공기에 대한 위험이 최소가 되는 장소에 설치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다만 가볍고 부러지기 쉬운 소재로 지지대를 설치했을 때 구조물이 견고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모든 지원시설의 적절한 구조적 특성을 명시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규정을 뒤져볼 필요도 없었다. 그냥 구글에서 ‘Localizer Antenna’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하나같이 “부서지기 쉽게(frangible)”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사고 원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설령 이번 사고의 원인이 콘크리트 구조물에 있지 않고 다른 것에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처음 이곳에 공항이 들어설 때부터 사고가 일어난 29일까지 모두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사고가 생겼을까 싶다. 벌써부터 규정이 없다느니, 규정에 맞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부디 이번에는 제대로 된 교훈을 얻길 바란다.
* 남아프리카에 있는 한 항공사는 ‘계기착륙장치(ILS)에 대한 요구 사양’에서 로컬라이저 안테나 지지대의 총 흡수 에너지가 50KJ 미만으로 붕괴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조항을 제시하기도 했다. 즉 지지대에 그렇게 큰 힘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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