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

[칼럼] 쉬운 공공언어와 '퇴청(退廳)'

보리밥나무 2024. 12. 4. 12:33

어제 예조(禮曹)가 와서 이 일을 아뢸 때는 신 등이 퇴청(退廳)한 뒤였기 때문에 아뢰지 못했던 것입니다.”

 

151832일 중종실록에 기록된 말이다. 당시에는 관리들이 관청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것을 일컬어 퇴청(退廳)’이라고 했다. 퇴청은 등청(登廳)’ 또는 출청(出廳)’의 반대말인데, 등청1977년에 출근이라는 말로, ‘퇴청1992년에 퇴근이라는 말로 순화되었다. 가급적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쓰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4시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전 직원의 비상 소집을 해제하면서 퇴청해도 된다는 말을 했던 모양인지 모든 방송이 국방부 직원 퇴청이라는 소식을 뉴스로 전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아직도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나 싶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에 퇴청은 사극에서나 쓸 법한 과거의 말이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퇴청은 아직까지 현재의 말인 모양이다.

 

그러나 등청이나 출청이라는 말을 지금도 예사로 쓴다면 모를까 퇴청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등청하는 시대에서 출근하는 시대로 바뀌었으니 이제 퇴청이라는 말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주기를 바란다. 국방부 직원들이 퇴근한다는 소식이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싶은 하루였는데, 공무원 사투리인 ‘퇴청이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 쓰는 언론을 보며 못내 아쉬웠다.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