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보훈용어 이대로 괜찮을까?
어제는 6.25 전쟁이 일어난 지 7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경의(敬意)’의 대상을 호국영령과 유엔군 전몰장병으로 밝히고, 대구와 경북 곳곳에서 치열하게 싸운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에 앞서 지난 6일,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는 ‘추모(追慕)’의 대상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유엔군 참전용사로 밝히고, 군인과 소방관의 안타까운 희생을 언급했다. 전국의 지자체들도 두 날에 추념식과 기념식을 개최했는데, 몇몇 지자체에서는 6.25 전쟁 기념식에서 추모의 대상으로 순국선열을 호국영령과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두 날의 행사는 기념식과 추념식으로 이름도 달랐고, 경의든 추모든 그 마음을 전하는 대상도 달랐다. 그런데 현충일 행사를 ‘추념식’이라고 하면서 6.25 전쟁일 행사를 ‘기념식’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기념’은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을 뜻하고, ‘추념’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날 모두 국가기념일로 분류되어 있지만 의미상 ‘추념식’이라고 해야 한다. 현충일은 기념할 일이 있었던 날이 아니고, 6.25 전쟁일은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일어난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익은 말이지만 말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실수하기 십상이다. 참고로 서울지방보훈청이 2019년에 펴낸 ‘알기 쉬운 보훈행정용어집’을 보면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순국한 사람”을 뜻하고, ‘호국영령’은 “전쟁터에서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분들의 영혼”을 뜻한다. 아울러 사전상의 의미로 현충일은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정한 날”이고, 6.25 전쟁일은 “6.25 전쟁을 상기하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정한 날”이다. 따라서 문맥상 6.25 전쟁일에 순국선열을 언급하거나 현충일에 순직공무원을 언급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BIGKinds)’에서 1990년 1월 1일부터 2024년 6월 25일까지 ‘6.25 전쟁’이라는 말이 포함된 기사의 연관어를 검색하면 ‘순국선열’이라는 말이 의미에 맞지 않게 사용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혼란은 말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를 교양인의 언어로 착각하는 비정상적인 언어관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가 내 말의 뜻을 오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언어습관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순국선열’을 ‘독립유공자’로, ‘호국영령’을 ‘전쟁유공자’로 바꾸어 부를 것을 제안한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할 목적이 아니라면, 말뜻을 이해하기 쉬운 말을 놔두고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17년 ‘국민의례 규정(대통령훈령)’을 개정하여 행사 성격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외에 묵념의 대상자를 임의로 추가할 수 없도록 했는데, 민주화 유공자를 비롯해 공무 중에 순직한 공무원도 공식적인 묵념의 대상에 포함하기를 바란다. 그들 모두 우리가 마땅히 추모해야 할 국가유공자이기 때문이다.
김형주(글말생활연구소 소장・상명대 한국언어문화전공 초빙교수)